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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 정신을 살려라

한상진-터치 2010. 1. 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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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수많은 개척자들이 바닷길로 나서며 인류 역사는 대항해시대라는 새로운 페이지에 접어든다. 이들은 새로운 무대를 발견하겠다는 일념으로 거친 파도와 싸우고 힘겹게 선원들을 이끌었다.

IT 대항해시대를 준비하며 새삼 기업가 정신을 조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새롭게 떠오를 IT 대항해시대를 진두지휘할 주인공도 결국 ‘성공’이라는 꿈을 가진 기업가다. 당대의 분위기가 항해를 진두지휘했던 개척자 집단을 독려했던 것처럼 이제는 IT 대항해시대를 이끌 기업가의 정신을 살리는 것이 화두가 돼야 한다.

◇갈수록 추락하는 기업가 정신=한국의 현실은 어떨까.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보고서 ‘한국 기업가 정신의 현황과 시사점’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가 정신은 갈수록 곤두박질치고 있다. 1977년 72.3으로 정점을 기록한 후 기업가 정신 지표는 1980년대 22점, 1990년대 9점을 기록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6점으로 급감했다. 30년 전에 비하면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기업가 정신지표는 5인 이상 제조업체수 증가율과 설비투자액 증가율, 민간연구개발비 증가율 세 가지 요소를 합산해 구한다. 기업가 정신의 호조와 둔화를 나타낸다.

기업가 정신지표의 쇠퇴는 새로운 제조업체가 늘지 않고, 기존 업체도 투자를 꺼린다는 이야기다.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과 사회적 분위기를 지목한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정책과 문화가 기업가 정신을 죽이는 화근이 됐다.
 
실패하는 기업은 곧장 낙인이 찍혀 퇴출된다. 부도는 죄악시돼 형벌로 처리된다. 부도를 낸 기업가는 대부분 형법으로 기소돼 범법자가 된다. 이 같은 현실에서 한계 기업은 유혹에 빠지게 마련이다. 부도를 막기 위해 무리수를 두면서 손실이 사회로 확산되고 결국 사회적 비용이 커진다.

기업가 정신이 가장 뜨거워야 할 곳은 벤처다. 벤처는 산업의 최전선을 이끄는 선봉대다. 지금 나라를 먹여 살리는 반도체, 휴대폰 등 전자산업도 알고 보면 벤처에서 시작됐다.

1990년대부터 벤처는 사회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지만 이제 벤처는 우리 산업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변했다. 코스닥이 출범하고 벤처특별법이 탄생하면서 성공 벤처가 등장했다. 벤처의 성공을 보자 한바탕 창업 붐이 일었다. 이는 당시 불어닥친 IMF 위기를 극복하는 토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양지에는 음지가 뒤따랐다. 우후죽순 벤처가 생겨나면서 벤처 사냥꾼과 함께 반 벤처 정서도 서서히 퍼졌다. 미국 IT버블 붕괴의 여파가 우리 벤처 생태계에도 미쳐 많은 벤처가 실패로 주저앉았다. 한 번의 실패에 신용불량자로, 범법자로 전락한 벤처인은 사회의 시선과 투자자들의 외면으로 재기 길이 막혔다. 학습 효과가 퍼지면서 벤처 기업인들의 위상이 추락하고 기도 꺾였다.

◇뜨거운 독려, 따뜻한 관용으로 기를 살리자=1세대 벤처기업가로 한국 벤처의 개척차, 벤처인의 전설로 불리는 이민화 중소기업청 기업호민관은 “혁신은 본질적으로 실패를 내포할 수밖에 없다”며 “창업과 성공, 재기로 이어질 수 있는 벤처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높은 창업 성공률이 곧장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다는 기대가 혁신의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창업하는 기업이 늘면 실패하는 기업도 많다. 하지만 대수법칙에 따라 국가적으로는 이익이 된다. 학습하는 실패, 도전하는 실패를 장려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해 7월부터 중소기업의 고충 해결 역할을 맡게 된 이민화 호민관은 “부분 실패를 통해 전체가 성장하는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며 “도전 정신은 실패를 지원할 때만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혁신 주도 경제를 위해서는 실패를 지원하는 패러다임으로의 변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벤처인들의 기업가 정신을 살리기 위해서는 제도와 문화를 함께 바꿔야 한다. 사회적 실익이 적음에도 기업가의 기를 꺾는 규제를 걷어내고, 벤처인의 힘을 북돋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이민화 호민관은 이를 위해 △M&A 중간회수 시장 △선순환 생태계 조성 △연대보증 해소 등을 구체적인 해법으로 꼽는다.

벤처가 자리잡을 때까지 늘 벤처인을 따라다니는 자금난은 M&A거래소(M&A 중간회수 시장)로 일정 부분 해소될 수 있다. 투자자에게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줄 때 벤처 돈줄이 가물지 않기 때문이다. 벤처 선순환 생태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벤처와 대기업, 선도기업과 기술기업이 얽혀 복합 생태계가 마련된다면 벤처와 벤처, 벤처와 대기업의 선순환도 가능하다.

특히 기업가 정신을 살리기 위해서는 벤처 기업가 연대보증 등 신용리스크 문제, 세무·관세 행정 등 규제가 해결돼야만 한다. 신용보증기관은 현재 법인기업을 기준으로 대표이사(전문경영인 제외), 무한책임사업, 실제 경영자, 과점주주 이사, 대표이사 등의 배우자나 직계존비속으로 기업경영에 참여하는 자 등에게 연대보증을 요구한다.

연대보증제도로 신용불량자가 양산되며 폐해가 크지만 실익은 저조하다. 호민관실에 따르면 연대보증제도로 신용보증기관이 회수하는 금액은 전체 보증잔액 대비 약 0.7%(최근 5년 기술보증기금 평균)에 불과하다. 창업 의지를 꺾는 주범으로 지목되는 제도의 성과치고는 너무 미미하다.

기업호민관실 신설을 필두로 최근 정부가 벤처업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지난해 10월 참석한 ‘벤처코리아 2009’ 행사에서 “실패한 기업인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가겠다”며 ‘재창업자금 지원’ ‘연대보증제도 개선’ ‘최고경영자(CEO) 고용보험 가입 허용’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범국가적으로 기업가 정신 확산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혀 벤처 업계를 독려했다. 뜨거운 독려와 따뜻한 관용만이 제2의 벤처 붐을 만들 수 있다.
 
 < 출 처 : 전 자 신 문 >